티스토리 툴바



누구를 믿을 것이냐


성석제,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누구를 믿을 것이냐" 중 발췌



  정리를 하자면 이렇다. 나는 치과에 다니고 있다. 그런데 치과의사가 내게 내 이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고 일방적인 판단으로 성한 이일지도 모르는 이를 치료하고, 아니 이 경우에는 치료가 아니라 망가뜨린 것이겠다. 그 이를 다시 원래대로 해놓는 비용을 내게 전가한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의심만 할 뿐 물어보지 못했다. 물어보아도 전문가들은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방면의 전문가, 권위자도 그렇게 해주는 것을 보지 못했다. 전문성이 높을수록, '길드'가 오래되었을수록 설명은 없다. 질문을 싫어한다.
  의사? 교통사고로 입원한 적이 있지만 한 번도 만족할 만한 설명을 들어본 적이 없다. 변호사? 교통사고 때문에 변호사를 쓸 일이 있었지만 너무 대하기가 어려워서 브로커를 찾았다. 아니 브로커가 찾아왔다. 무수한 박사?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들에게 물어볼 게 별로 없었지만 같은 '사'자 돌림이니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교통사고에 '사'자 들어가는 사람 중에서 내게 제일 큰 보탬을 준 사람은 병원에서 집까지 나를 태워다준 택시 운전기'사'이다.
  약간만 과장을 해보자. 세상에는 무수한 전문가가 있다. 고장난 차를 맡기면 정비사가 신이 된다. 국정을 맡기면 정치가가 신이다. 치안은 경찰이, 행정은 공무원이 신이다. 가능하면 그런 신과 접촉을 안 하고 살면 좋은데, 그럴 수가 없다. 앞으로도 육해공이라는 생활공간에서, 이승에서 무슨 일 때문에라도 치과병원의 의자에서처럼 무력하게 드러누워 전문가, 권위자, 권한의 위임을 받은 사람의 처분에 맡기게 될 가능성은 백분의 백, 확률 백 퍼센트이다.

  대책1. 그저 믿는 수밖에 없다. 그게 마음이 편하다. 억울한 일이 생겨도 모르는 게 약이다. 알기 싫은데 알게 된다면, 빨리 깨끗이 잊어버리는 게 좋다.
  대책2. 따지고 추궁하고 밝혀낸다. 손해를 보지 않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위자료를 받아낸다. 상대를 패가망신시킨다는 자세로 끝까지 해본다.
  대책3. 우리 민족의 수준을 믿는다. 사일구 혁명과 광주 민주화 항쟁, 팔십칠년 유월의 혁명, 월드컵 4강을 이루어낸 위대한 이 민족이 언젠가는 사회 구석구석, 갖가지 분야에서 선진화될 것이라고 믿고 참고 기다린다. 늙어 죽을 때까지, 가능하면 아프지도 말고 차를 고장내지도 말고 법을 어기지 않고 착하게 살면서.
  대책4. 나도 어떤 분야의 권위자가 된다. 평소에는 조금 당해주다가 내 분야로 그들이 들어오면 눈물이 확 나도록 인생의 쓴맛을 보여준다.

  대책1은 농경문화 속에서 오래도록 살아온 조상들의 전통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그럴듯하고 대책2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미국식인가 싶고 대책3은 소설 쓰는 성 아무개 식의 대책을 위한 대책에 불과한 것이니 웃어넘기자. 대책4가 내 기질에 제일 맞는 것 같기도 한데...
 

Trackback 0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