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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밤의 잉여일기



비가 (또) 온다. 비가 오니 괜히 센치해져서 뭐라도 적고 싶어진다. 실은 아까 모르는 사람의 블로그에 어쩌다 흘러들어가게 됐는데, 그 사람이 별 특별한 일도 아닌 걸 두런 두런 적어 놓은 걸 보고 왠지 그런 게 예뻐보였다. 뭔가 대단하고 거창한 걸 써야 한다는 나의 강박관념이 조금은 수그러들었다.

그렇다고 꼭 내가 언제나 거창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늘 거창한 척은 잘 했지만서도.

아! 비가 온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비가 오면, 내일은 또 날씨가 흐리려나. 아까 심상정씨의 트위터에서 봤는데, 경남엔 지난달 햇볕난 날이 3일 밖에 없어 농작물 피해가 재난 수준이라고 한다. 악. 비 때문에, 볕 때문에 내 농작물이 맥을 못추면 어떤 기분일까. 진짜 속상할 것 같다. 일년... 일년이라는 시간을 보살핀 것들이 망가진다라. 예전에 어떤 중년배우가 아침프로에 나와서 "사람이라면 농사를 지어봐야 한다. 땅에 씨앗을 심고, 물과 거름을 주고, 정성으로 돌보아 마침내 하나의 열매로 맺어지는 그 과정을 겪어 봐야 한다."고 말했던 게 생각난다. 그 사람은 전원주택 앞에 텃밭을 기르고 있었는데, 행복해 보였다. 다시 생각하니 젊은 여배우였던 것 같기도 하다. '박진희' 쯤 되는...

요즘은 '결혼'에 대해 생각한다. 좋은 결혼 생활을 하려면 난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까? 하고 생각해 본다. 그리고 좋은 결혼 생활이 유지되려면 남편과 시댁 식구는 이런 저런 성향인 게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한다. 결혼 하면 시어머니랑, 우리 엄마랑, 나랑, 우리 아기랑 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 가고 싶다. 다같이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 계획을 좀 더 구체적으로 그리게 된다. 결혼은 몇 년 뒤에 해야 하지? 그럼, 시부모님 될 분들께 인사는 언제 드려야 하지? 인사 드리기 전에 난 어떤 준비를 해야하지? 하다보면, 당장 오늘 내일 해야 할 일들이 코앞에 닥친다. 아... 하기 싫다.

비 오는데. 오늘만 안 하면 안되나.

사실 안 했다. 오늘 아침부터 새벽까지 잉여짓 했다. 유투브에서 놀고, 트위터에서 놀고, 별별 사이트 돌아 다니고, 책 조금 읽은 것 안 잊어버리려고 워드에 정리하고, 만날 눈팅만 하던 커뮤니티에 댓글을 10개 넘게 달았다. 어떤 사람의 고민글을 보면서 너무 안돼 보이고 가여워서 울뻔하기도 했다. 그래서 정성스럽게 댓글을 달았더니, 정말 큰 위안이 되었다고 고맙다고 또 댓글이 달렸다. 음, 하루종일 난 잉여였고 오늘 할일을 내일로 미뤘지만, 어떤 사람한테는 큰 위안을 주었구나. 다행이다. 꼭 힘내세요.

비 오는데 자기 싫다. 비 오는 냄새가 좋다. 냄새 맡으려고 창문을 조금 열어뒀는데, 동생이 안 깼으면 좋겠다. 심즈할까? 아, 이 시간에 심즈 시작하면 네시에 잘 거 같은데 그럼 기분 더러워 질 거 같아. 안해. 그냥 자야지.

아 맞다, 던킨 도넛에서 츄러스 판다. 이제 놀이공원이나 영화관에 가지 않아도 츄러스를 사 먹을 수 있다. 진심으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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